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한편 그 감정이 무섭고 두렵다고 느꼈다. 그는 시라부 에게 처음이었으니까,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감정도, 동경하는 마음도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색하고 두려웠다. 그래도 그는 우시지마를 사랑했다. 또 존경하고 동경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라부
그는 우시지마가 자신을 부를 때에도 긴장하고 떨려했다. 남들이 제 아름을 부를 땐 언제나의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하는 그가 말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카와니시는 그가 딱 첫사랑에 빠진 소녀같다고 말했다.
-네 우시지마상.
그런 주제에 초연한 척은 엄청 했다. 다만 그를 볼 때마다 생기를 찾는 눈이나, 떨리는 손끝은 감추지 못했다.
-이번 토스도 좋았다. 다음번에도 계속 그렇게 가지
-알겠습니다. 우시지마상
한순간에 시라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 만면엔 환함이 자리 잡았다. 그의 몇 안되는 진정한 기쁜 표정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우시지마를 사랑했다. 그는 모두가 알게 우시지마를 동경했다. 오늘도 그런 그의 마음은 마치 여린 새싹처럼 자라만 갔다.
그런 가슴 떨리는 순간들도 잠시 어느새 3월이 찾아왔다. 3학년들이 졸업 할 시기가 찾아 온 것이다. 겉으로는 초연한 듯 행동했다. 하지만 그 속은 썩어 문들어져 갔다. 더 이상 그에게 토스를 올릴 수 없다. 후배라는 이유로 말을 걸 수도 그에게 다가갈 구실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백 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경멸 당할 것이 무서웠다. 그럴바엔 차라리 고등학교 후배, 자신에게 토스를 올려주던 후배 정도로 남는 게 좋다고 시라부는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은 받기 싫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아팠다.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는 마음이 상처가 되어 그를 쓰리게 만들었다
-상처는 아프기 전 꽃투성이었죠 어이없는 꽃냄새가 나죠
그는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를 읊었다. 그 속에서 그는 꽃이었다. 잔뜩 시들고 상처로 얼룩진 꽃. 꽃내음은 취하도록 아름다웠지만 정작 전해져야 하는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 시들고 상처만 가득 한 꽃이었다.
-상처는 무슨 꽃노래를 불러야 복원될까? 꽃의 슬픈 가사를 잊어버렸죠.
더 이상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그 꽃은 언제나 자신의 바보같음을 탓하며 울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걸까, 뭐가 그렇게 아픈걸까. 그 꽃에게 그 사람의 존재는 얼마나 대단한걸까. 그건 당사자도 몰랐다. 그저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기만을 바라며 밤마다 눈물 지었다. 금붕어가 있던 어항에 밤하늘을 밝게 비춰주는 달님을 가득 담아 빌었다.
-제발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하지만 그 가련한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은 채 졸업식이 찾아왔다. 시라부의 눈이 퉁퉁 부워있었다. 아마 어젯밤 밤을 지새며 쉴틈없이 눈물을 흘렸던 탓이겠지.
-너 괜찮아?
카와니시의 걱정 섞인 물음이 그에게 향했다.
-어
건조한 그의 대답을 끝으로 그들에게 침묵이 찾아왔다. 카와니시는 더 이상 시라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것을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자존심 넘치는 시라부가 그런 사실을 말할 리 없으니까. 그저 얌전히 있었다.
-늦겠다. 가자
-응
졸업식이 시작 되었다. 우시지마는 배구팀의 주장으로 단상에 한 번 더 올랐다. 아마 3년동안 에이스로, 주장으로 팀을 지켜준 그의 대한 고마움의 표시겠지. 그가 단상의 올라감과 동시에 시라부의 시선이 그에게 꽃혔다. 온세상에 저와 그밖에 없는듯 그 시선은 집요했고 간절했다. 시라부는 진정으로 그를 동경했고 사랑했다. 그저 어린날의 우상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느새 우시지마의 시선도 시라부에게로 닿았다. 짧은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좀 이따 부실 뒤에서 보지-
우시지마가 입모양으로 무엇인가 말했다. 제에게 말하는건지 혼란스러웠지만 그의 시선은 저를 향해 있어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어느새 졸업식이 끝이 났다. 시라부는 분주하게 부실 뒤편으로 향했다. 어느새 그 인파에서 빠져나온건지 우시지마는 부실 뒷 나무에 기대있었다.
-이제 왔나, 시라부
-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시지마상
-아니다
-아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너한테 줄 게 있다.
-네? 네
-여기
우시지마 답지 않게 꽤나 수줍어 하며 건낸 것은, 그의 교복 단추였다. 시라부는 약간 당황했다.
-이걸 왜 저한테
-텐도가 그러더군.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라고. 졸업 전에는 하고 싶었던 말이다. 늦게 해서 미안하군 시라부
시라부의 대뇌가 정지된 듯 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인지 할 수 없었다. 그가 날 좋아한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우시지마가, 자신의 우상, 자신이 짝사랑 하는 대상, 그런 사람이 자신을 좋아 한다. 그것은 그의 머리를 정지시키고 그의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기 충분한 소리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뚝뚝,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 저 좋아하세요?
울음 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추해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었다.
-왜 우는건가
다정한 그의 손길이 시라부의 얼굴에 닿았다. 다정히 눈물을 닦는 그 손의 온기의 시라부는 또 한번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좋아서요, 우시지마상이 저 좋아한다는게
-그런가, 다행이군
그가 웃었다.
아, 시라부의 얼굴은 금새 환희를 띄었다. 꿈이 아닌가 봐, 이거.
그들의 위로 언젠지 모르게 가득 피어있던 벚꽃잎들이 흩날렸다. 마치 그들을 축복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