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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우상

 

 

그 날 우시지마는 집을 일찍 나섰다. 차가 말썽을 피우는 탓이었다. 차를 수리 센터에 맡기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 우시지마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차를 타고 바쁘게 지나가며 볼 수 없는 것들도 보고, 간만에 아침도 먹었다. 길가에 하나 둘 만발한 꽃들도 괜히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든 잘 풀릴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차가 말썽을 피운 것은 그닥 잘 풀린 일은 아니지만 간만에 걸어서 역까지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우시지마의 기대감을 꽈악 짓눌렀다. 그야말로 사람을 쑤셔 넣은 듯 했다. 우시지마는 그래도 자기가 키가 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키가 작았다면 머리 끝 까지 파묻혀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충 그렇게 위로를 하며 흔들리는 지하철에 제 몸을 끼워 넣고 있었다. 문득, 저의 정장 주머니 위로 스쳐지나가는 손이 느껴졌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차 안이라 그저 스쳐지나갔으리라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우시지마는 감이 좋았다. 들어있던 지갑이 없어졌다. 소매치기다. 이렇게 좁디좁은 공간에서 누가 대범하게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우시지마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었기에 금방 사람들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갔다. 그 사이로 작은 체구의 남자가 끼어 나가는 게 보였다. 그의 손에는 익숙한 우시지마의 지갑이 들려있었다. 현금이 얼마나 들었나 확인이라도 하려는 참이었나보다.

 

우시지마는 밀려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내렸다. 자신이 내릴 정거장은 아직 세 정거장이 남았지만 우시지마는 저의 지갑을 든 남자를 쫓아갔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른 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선 우시지마가 지갑을 든 손목을 낚아챘다. 한 손에 쥐어지는 손목이 가느다랗다.

 

 

"지갑."

 

"……."

 

"지금 돌려주지 않겠다면 경찰서로 가지."

 

"아, 알았어요- 주면 되잖아요."

 

 

그러니 이것 좀 놓으라는 듯 남자가 잡힌 손목을 흔들었다. 우시지마는 순순히 손목을 놓아주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으면 톡 하고 부러질 것 같은 탓이었다. 남자는 우시지마에게 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며 눈치를 살피다 그대로 뒤를 돌아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튀어나가는 뒷모습에 잠시 당황하던 우시지마도 그 뒤를 쫓았다. 마른 몸이 가득 찬 사람들 사이를 잘도 뛰어다녔다. 우시지마는 제 큰 몸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남자를 쫓았다. 잡히지 않을 것 같던 남자의 뒷덜미가 결국 우시지마의 손에 잡혔다. 에이, 썅. 욕을 중얼 이면서도 남자는 경찰서로 가는 우시지마의 발걸음을 순순히 쫓아왔다.

 

우시지마는 이 마른 남자가 성인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꽤나 왜소했고 얼굴도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실제로도 남자는 성인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경찰서에 앉은 남자는 구부정한 자세로 경찰의 질문에 대강대강 대답을 하고 있었다. 성의 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름, 시라부 켄지로. 열여덟 살?"

 

"……."

 

"부모님은."

 

"두 분 다 안 계시는데."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소매치기를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우시지마는 기껏해야 질 나쁜 학생이겠거니―생각하고 있었다. 질 나쁜 학생이 잠시 동안의 일탈 행동을 하며 집을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라부 라는 아이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말들은 우시지마의 생각을 조금 난잡하게 만들어버렸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안 계시고, 마땅히 묵고 있는 거처도 없었다. 우시지마는 저를 흘끔 올려다보는 시라부의 시선에 그만, 시라부의 어깨를 붙잡고 말았다.

 

 

"어린 학생이 그랬으니, 그냥 훈방조치 하는 게 좋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예. 대신 나 좀 보면 좋겠군."

 

 

그리고 우시지마는 시라부와 경찰서를 나왔다. 썩 유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시라부는 어두운 표정이었고 대답에도 성의가 없었으니. 우시지마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출근 시간은 늦어버린 채였다. 병원에 들렀다 간다는 거짓 연락을 남긴 채 우시지마가 시라부를 데리고 향한 곳은 식당이었다. 시라부는 제 앞에 놓이는 제대로 된 식사들에 이건 뭐 하는 건가. 싶은 눈빛으로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기가 막힐 만도 했다. 저가 소매치기를 시도한 사람이 저에게 다짜고짜 밥을 사주다니. 시라부는 경계심을 놓지 않은 얼굴로 우시지마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배고플 테니, 먹어라. 그러고는 우시지마 저도 숟가락을 드는 것이었다.

 

우시지마가 먼저 입을 대자 시라부도 그제서야 슬쩍 경계심을 풀고 젓가락을 들었다. 경계는 경계지만, 시라부는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보는 게 얼마만인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 느리게 젓가락을 움직이던 손가락이 어느새 조금 바빠졌다. 그동안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시라부는 밥을 깨끗하게 비우고 있었다. 어느새 숟가락을 내려놓은 우시지마는 물끄러미 그런 시라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시라부 켄지로 라고 했던가."

 

"……그런데요."

 

"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에 머무는 건 어때."

 

"예?"

 

"집안일이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묵어라. 그에 맞는 돈도 줄 테니, 빚도 갚는 게 좋겠지."

 

 

사실 우시지마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사실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시라부는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묵고 있는 거처도 없었지만 빚덩이는 떠맡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부모님 앞에 놓여있던 빚이 시라부에게 떠넘겨진 것이겠지. 그래서 우시지마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레 시라부에게 그런 제안을 해왔다. 갑작스럽긴 갑작스러운지, 시라부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라부가 아직도 저를 경계하고 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챈 우시지마는 시라부가 손을 댔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보였다.

 

 

"저기 S고등학교 선생이다. 이상한 짓 하지 않아."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딱 시라부, 너만 하지."

 

"……."

 

"싫은가?"

 

"……저 집안일 잘 못하는데. 가르쳐 주세요."

 

 

-

 

 

시라부는 자신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 어디쯤을 기어 다니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랬다. 부모님은 애초에 어릴 적에 돌아가셨고, 빚은 있었다. 유산 포기 라던가 이런 저런 법적 지식을 알리가 없던 어린 나이의 시라부는 그대로 빚을 떠맡았다. 처음부터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빚만 가지고 있는 시라부가 안쓰럽다고 느낀 친척들이 시라부를 고아원에 들여보내 주었다. 직접 시라부를 키울 생각은 없었던 듯 했다. 그 누구도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고아원에서 시라부는 적응하지 못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적응을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적응을 해도 저의 방식대로 너무 잘 해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 만은. 시라부는 고아원에서 늘 골칫덩어리였다. 마땅히 같이 잘 지내는 친구는 없는데, 그렇다고 다가오는 아이를 받아주거나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딱히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시라부는 성격이 그리 좋지 못했다. 시라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눈에 보이면 갖고 싶어 했고, 그것을 빼앗았다. 자신의 마음대로였다. 종종 다른 아이들이 켄지로는 순 제멋대로야! 하며 욕을 해오면 힘껏 그 아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시라부는 고아원에서 내쫓아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아원의 원장은 시라부를 그대로 두었다. 얄팍한 동정심이라며, 잘못된 선택이라며. 고아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몇 몇 선생님들은 원장을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장이 시라부를 내버려두어도 시라부는 결국 제 발로 떠나게 되었다. 외부적인 힘이 가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좋은 집으로 입양을 갔던 아이가 고아원에 놀러왔던 날이었다. 이것저것 좋은 선물들을 사온 채 그 아이는 그동안 친했던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와 고마움을 전했다. 당연하게도 시라부는 그 아이에게도 미움을 샀고, 그 아이는 아무런 선물도 시라부에게 주지 않았다. 시라부는 그 정도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선물은 주지 않으면서도 시라부에게 한 마디는 톡 던져버렸다.

 

 

―쓰레기 자식. 네가 그렇게 쓰레기 같으니까 네 부모님이 너한테 빚만 남기고 가 버린 거야.

 

 

시라부가 고아원에서 골칫덩어리를 맡고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는 건 나빴다고. 조금 더 큰 시라부는 종종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 였을텐데. 어린 아이긴 하지만 시라부는 몸이 먼저 나가는 아이였고, 결국 그 날은 그 아이를 거의 애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려버렸다. 고아원의 어른들은 그 아이의 부모님들과 따로 얘기하기에 바빴고, 아이들은 그 주위에서 어떻게 하냐며 서성댔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속수무책으로 시라부에게 맞고만 있었고 결국 고아원의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원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뒤늦은 얘기에 허겁지겁 달려간 방에는 이미 얼굴이 피로 얼룩진 아이와 분노에 차 씩씩대는 시라부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라부는 소년원에 한 번 들어가게 되었다. 그 아이의 새 부모가 된 사람들은 꽤나 깐깐하고 아이를 굉장히 사랑하는 듯 했다. 입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재수 없어. 물끄러미 아이와 부모를 보면서 시라부는 생각했다. 소년원에서 근 2년 정도를 지내다 나왔을 때 시라부는 이미 고아원에서 외면당한 상태였다. 그래도 시라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고아원에 가봤자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니 저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라부는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능숙한 소매치기 수법으로 시라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는 충분했다. 그 날 훔친 지갑에서 돈을 꺼내 끼니를 대충 챙기고 남은 돈으로는 pc방이나 찜질방에서 나이를 속여 밤을 지냈다. 그렇게 시라부는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지속해갔다. 그러던 와중에 우시지마를 만나게 되었다. 시라부는 우시지마에게 지갑을 훔친 것이 걸렸을 때에는 꼼짝없이 이번에도 소년원에 들어가겠구나. 아니, 열여덟 살이나 먹었으니 그냥 감옥에 가려나. 싶었다. 차라리 그게 잘 됐나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그러지 않았다. 시라부를 경찰서에서 데려와 밥을 먹였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왔다. 시라부는 의아했다. 경찰서에서 저에게 훈방조치를 해달라고 했을 때부터 의아했다. 하지만 밥을 사주고, 집에 머물라는. 빚을 갚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그저 오지랖이 넓을 뿐일 수도 있는 고등학교 선생인 우시지마의 말을 듣고 시라부는 세상에 아직 빛이 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시라부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과 달랐다. 처음이었다. 시라부는 문득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시라부에게 있어 우시지마는 밑바닥에서 건져준 구원자이자, 우상이었다.

 

 

"우시지마 씨, 이거……."

 

"아."

 

"…죄송해요."

 

"괜찮다. 다치진 않았고?"

 

 

시라부는 모든 게 서툴렀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요리부터 청소까지 모든 게. 하지만 우시지마는 불평 하나 하지 않았고 시라부를 쫓아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저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차근차근 시라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시라부는 우시지마가 가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우시지마는 시라부에게 있어 완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완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선생님 치고는 큰 집에 홀로 살고 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깔끔한 디자인의 액자가 있었다. 결혼사진 이었다. 우시지마는 한 번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한 상태였다. 세상의 기준에 있어서 우시지마는 완벽하지 않았다.

 

자신이 망쳐버린 요리의 뒷수습을 자처하는 우시지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라부는 고개를 돌려 서랍장 위 액자를 보았다. 집안일도 요리도 능숙했고, 잘생겼고, 능력도 좋았다. 성격도 좋았다. 시라부는 문득 이런 남자가 왜 이혼을 했나 궁금해졌다.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궁금증이었지만 시라부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데에 무뎠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다행인 것은 우시지마도 이런 데에 무뎠으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 이혼 하셨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

 

"……."

 

"누군가를 전력으로 사랑하는 데에는 서툴다. 아무래도."

 

 

그리고 돌아본 우시지마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도 더 슬픈 표정이었다. 금세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지만. 시라부는 뒷정리를 빠르게 마친 채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우시지마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라부는 그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됐다. 시라부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서툴렀으니. 누군가를 그런 감정으로 바라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런 사랑을 시라부에게 줄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부모님도 일찍이 시라부의 곁을 떠났고. 시라부는 홀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주방을 마저 정리하고 거실로 나오던 시라부의 눈에 액자가 띄었다. 오늘은 왠지 더, 액자에 시선이 닿았다.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던 시라부는 투명한 유리에 비친 따스한 모습의 우시지마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에 결국 액자에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시라부가 집안일에 익숙해지고, 요리도 먹을 만하게 만들 수 있게 되자 시라부는 집의 모든 일을 해내었다. 우시지마가 출근을 한 낮에는 집이 텅 비어 있는 게 조금 외롭다고 느낀 시라부는 바쁘게 집 안을 돌아다녔다. 이미 깨끗한 집 안을 치우고 또 치웠다. 더 이상 치울 수 없을 정도로 집이 깨끗해지면 주방에 틀어박혔다. 우시지마는 늘 저녁을 시라부와 함께 먹었기 때문이었다. 시라부는 서투른 솜씨로 요리를 했다. 우시지마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듯한 요리 책들도 많이 참고했다. 그렇게 요리도 손에 익고 난 뒤로 직접 장도 봐왔다. 길 찾는 데에 딱히 밝지는 않았던 시라부이기에 우시지마가 알려준 길들만을 그대로 따라가며 장을 봐왔다. 시라부는 더 이상 자신의 삶에 그늘이 진 곳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짧디 짧은 생각이었다.

 

 

"집 좋네, 켄지로 군?"

 

 

그늘은 사라지지 않았구나. 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서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것뿐이구나. 우시지마의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울리는 초인종에 시라부는 택배가 오거나 우시지마가 이르게 도착했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린 현관문 틈 사이로 보이는 번지르르한 얼굴에 딱 굳어버렸다.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한 발 느렸다. 이미 문은 활짝 열려버린 상태였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의 뒤로 거구의 남자들 몇 명이 마구잡이로 시라부를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라부가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라부가 빛이 나도록 정리해놓은 집들이 조금씩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 팔았어? 얼굴? 몸?"

 

"돈은 꼬박꼬박 보낼 테니까, 빨리 나가요."

 

"그렇게 나오면 섭섭하지. 켄지로 군이 이렇게 좋은 집을 구했는데. 응?"

 

"……내 집 아니에요."

 

"그래, 네 집 아니겠지. 어디서 낚은 남자 집이겠지. 그럼 돈 갚기도 쉽겠네."

 

 

시라부가 아니라고 부정을 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집에 들어온 남자가 다짜고짜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빨리 좀 갚으라고, 씨발. 나지막히 으르렁대며 남자가 테이블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짓밟았다. 우시지마 씨가 아끼는 도자기. 우시지마 씨가 좋아하는 그림. 우시지마 씨의…결혼사진. 모든 것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서랍장 위를 차지하고 있는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따스한 햇볕을 받은 우시지마의 사진 위로 깨진 유리 조각이 튀었다. 안 돼. 안 되는데. 시라부의 팔이 묵직한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내 떨어진 물건 마냥 바닥에 내쳐졌다. 벌떡 일어난 시라부가 다시금 팔을 붙잡았다. 소용없었다. 오히려 시라부의 얼굴로, 몸 위로 그 묵직한 팔들이 휘둘러졌다.

 

거지같은 인생. 시라부는 저의 몸 위로 쏟아지는 발길질, 주먹질에 두 눈을 꾸욱 감은 채 이를 앙 물었다. 빚쟁이들에게 잡혀서 빚 청산을 독촉 당하며 맞는 것쯤은 괜찮았다. 소년원에서 시비가 붙었던 적도 잦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맞는 일도 적지 않았다. 몸으로 닿아오는 아픔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시라부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깨끗했던 바닥 위로 계속해서 물건들이 떨어져 내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자기가, 병이. 우시지마가 사온 꽃이. 시라부와 함께 바닥 위를 굴렀다. 시라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우시지마의 얼굴이 빙그르르 눈앞에 떠올라서였다. 우시지마 씨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그럼 잘 부탁해, 켄지로 군?"

 

 

비실비실 웃으며 남자가 담뱃재를 바닥에 털어버리곤 현관문을 나섰다. 바닥에 가득한 담뱃재와 담배꽁초들, 떨어진 물건들, 깨진 파편들. 바닥에 거의 눌려있다시피 늘어져있던 시라부가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쑤셨다. 깨진 유리 파편 위로 비친 얼굴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렇게 깨끗하게 닦았던 바닥인데. 도자기인데. 꽃인데. 어느새 더러워진 마룻바닥 위로 시라부의 눈물이 자국을 그려내었다. 우시지마 씨한테 어떻게 말을 하지. 그 생각이 가득 차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흐려진 시야 사이로 우시지마의 결혼사진이 들어왔다. 바르르 떨려오는 다리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어디 뼈가 하나쯤은 나갔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시라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바닥을 닦고 치웠다.

 

담뱃재가 남아있는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원래의 바닥처럼 깨끗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닦고 또 닦았다. 하지만 희미하게 남은 자국이 시라부는 마음에 걸렸다. 깨진 도자기와 꽃병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를 사와서 붙여볼까 생각도 했지만 어중간하게 복구를 했다가는 중간도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시라부는 난잡하던 바닥을 다시 깨끗하게 치우고 비틀대는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우시지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직 밥도 하지 못했는데.

 

 

"시라부."

 

 

현관에서부터 시라부를 부르는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시지마는 오늘 시라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했다. 집 번호로 전화가 왔길래 받았더니 시라부였다. 시라부는 쭈뼛한 목소리로 오늘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올 수 있냐고 물어봐왔다. 왜냐고 묻자 밥을 못했다고 하는 게 전부였다. 우시지마는 그 정도로 왜 굳이 밖에서? 하고 생각했다. 그럼 집에는 밥이 없을 텐데, 시라부는 밥을 안 먹나? 게다가 그 정도는 퇴근하고 같이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대답했지만 시라부의 목소리에서는 조금 당혹감이 묻어나왔다. 우시지마는 시라부에게 무언가 사정이 생겼음을 넘겨짚었다.

 

우시지마는 퇴근을 서둘렀다. 평소보다 조금 더 조급한 발걸음으로 학교를 나오고 현관문을 열었다. 주방에 시라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앞치마를 맨 채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저가 끝까지 완고하게 집에서 먹겠다고 하는 탓에 뒤늦게 저녁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대충 가방과 넥타이를 소파에 두었다. 테이블 위에 꽃병이 있지 않았나. 우시지마는 자켓을 벗으며 문득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오셨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돼요."

 

"…무슨 일 있었나?"

 

"아무 일도…없었어요."

 

 

시라부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우시지마는 돌아간 시라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상처였다. 상처? 우시지마는 그것을 한동안 들여다보다 거실로 갔다. 테이블 위에 꽃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없다. 자신이 꽤나 아끼던 도자기도 없다. 서랍장 위의 액자도 없다. 시라부가 그것들을 모조리 치웠을 리가 없다. 시라부는 늘 정해진 곳에 물건을 놓고 그저 청결하게 유지만 했다. 함부로 우시지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의아했다. 우시지마가 다시금 시라부에게 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 시라부?"

 

"……"

 

"솔직히 말해줘라."

 

"…돈 갚으래요."

 

"…도자기도, 병도, 액자도. 빚쟁이들 짓이겠군."

 

"죄송해요, 우시지마 씨. 괜히 여기 있어서 피해만 드리고. …원하시면 나갈게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는 듯,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듯 시라부는 덤덤하게 말을 꺼내왔다. 정적이 흐르던 공간에 밥이 다 되었다는 소리가 울렸다. 시라부는 앞치마를 벗어 원래 걸어두던 곳에 걸어두었다. 밥도 다 됐고, 국도 반찬도 다 됐다. 끝났다. 모든 게. 시라부의 손이 천천히 그릇을 꺼내들었다. 저녁만 차려드리고요. 마치 우시지마의 집을 떠나는 게 확실한 사실이 된 것 마냥 시라부가 중얼였다. 거실에서 그런 시라부를 멀거니 바라보던 우시지마의 발걸음이 성큼 주방으로 향했다.

 

우시지마가 늘 쓰던 그릇에 밥을 담던 시라부가 고개를 돌렸다. 우시지마가 코앞에 서있었다. 지금 당장 집을 나가라고 할까봐 조금, 두려웠다. 시라부는. 그래서 애써 우시지마의 시선을 피하며 밥을 마저 담았다. 별안간 우시지마의 손길이 부드럽게 시라부의 얼굴을 감쌌다. 우시지마에 의해 시라부의 고개가 돌려졌다. 시라부는 당혹감에 눈동자의 크기를 조금 키웠다. 시라부의 두 볼을 잡은 우시지마의 손바닥의 체온이 따스했다. 여기저기 남은 상처 위로 우시지마의 엄지손가락이 스쳐 지나갔다. 그 자그만 체온조차도 너무 따스했다. 작고 큰 상처를 금방이라도 부서질 유리를 만지는 것 같이 우시지마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괜찮다. 나가지 않아도 돼."

 

"……."

 

"이런 일이 있게 해서 미안하다, 시라부. 조금 더 단속을 했어야 했는데."

 

"…우시지마 씨."

 

"무섭지 않았나?"

 

 

무섭지 않았냐구요. 시라부가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따끔한 상처 위로 닿아오는 손길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 시라부는 그 목소리를 한 번 더 곱씹어보았다. 무섭지 않았냐구요. 무서웠어요. 지금도, 전에도, 그 옛날부터. 너무 무서웠어요. 시라부의 두 눈가가 흐려졌다. 발갛게 물든 눈가를 가로질러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시라부는 열여덟. 고아원과 소년원, 거리를 전전했다고 해도 고작 열여덟이었다. 부모를 잃은 소년이었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불우한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소년이었다. 맞는 것이 익숙하다고.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딛고 일어 설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무섭다고, 두렵다고 외쳐도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라부는 언제나 익숙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살았던 것이 익숙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서웠어요, 무서웠어요, 우시지마 씨. 울음이 섞여서 뭉개진 발음으로 중얼 이며 시라부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려내었다. 무섭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면 그 눈물을 닦아주는 다정한 손길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작게 느껴지는 몸을 품에 꼬옥 안아주는 넓은 품이 있었다. 시라부는 제 뒷통수에, 허리에 닿아오는 따스한 손길에 자꾸만 올라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 어릴 적부터 구석에 밀어 넣고 있었던 두려움, 어린 마음. 자신을 건져준, 구해준 우상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밀려오던 불안감. 불안정했던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괜찮다, 시라부. 커다란 울음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잔잔한 목소리에 시라부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우시지마 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구나. 우시지마 씨와 계속 있어도 괜찮겠구나. 그렇게 그 날 시라부의 마음 속 그늘 한 구석에 숨어있던 어린 마음들과 두려움은 눈물을 타고 사라졌다. 우시지마의 따스한 손길 너머로.

 

 

-

 

 

 

 

우시지마의 집으로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던 그 날. 시라부가 한 뼘 성장하게 된 그 날 이후로 우시지마는 전 보다 퇴근을 빨리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대에 들어오던 우시지마는 저녁을 준비할 시간대에 퇴근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시라부가 잘 있는지 확인 차에서였다. 시라부는 우시지마의 그런 보호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기분이었지만 좋았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보호 같은 건 받아 본 적도 없었던 시라부이기에 더 그랬다. 그렇게 시라부는 별 탈 없이 우시지마의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날씨가 좋았다.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시라부는 그 날도 어김없이 집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시라부가 묵는 방과 가까이에 있는 우시지마의 서재. 조금 어둑한 그 공간에 불을 켜고 매일 털어내어 얼마 없는 먼지들을 털어내었다. 바닥도 쓸고 닦고 하던 시라부의 눈에 작은 usb가 띄었다.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었다. 기억을 더듬은 시라부가 기억 속에서 usb를 꺼냈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우시지마의 서재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우연히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난 시라부는 우시지마가 붙들고 있던 노트북에 연결되어 있던 usb가 지금 자신의 손에 있는 usb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그것을 본 게 새벽 3시는 되었었는데. 그때까지 작업을 한 걸로 보아서 오늘까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usb가 지금 이 책상 위에 있다는 건….

 

 

"…큰일이네."

 

 

시라부가 작게 중얼였다. 바닥을 쓸고 닦던 청소도구들을 대충 바닥에 내려놓고 usb를 챙겨들었다. 시라부는 처음 만난 날 자신이 S고등학교선생이라는 것을 밝힌 우시지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길은 모르지만, 물어 물어서 가면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싶었다. 무작정 학교에 찾아가는 게 실례 일 것도 같았지만 꽤나 중요한 파일이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usb가 없는 것이 우시지마에게 큰 타격이 될 것 같았다. 시라부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맑았다. 가벼운 산책을 나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얇은 외투를 챙겨 입었다.

 

무작정 걸어보았다. 늘 가던 마트가 있는 길로 걸었다. 시라부는 마트를 지나치자 얼마 안 있어 S고등학교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껏 자신감이 생긴 발걸음으로 시라부는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서 더 이상 S고등학교를 알려주는 표지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 싶어 시라부는 계속 한 방향으로 걸었다. 계속 걷고 걸었지만 학교는 보이지도 않았다. 꽤나 오래 걸은 것 같았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었는데, 어느새 옆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시라부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S고등학교를 물어보았다. 친절하게도 사람들은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만, 시라부의 방향감각은 썩 친절하지 않았다.

 

 

"시라부?"

 

 

해가 아직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햇살이 어느 정도 자취를 감추려 준비를 하는 그 시간대였다. 우시지마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거나 현관문까지 마중을 나왔을 시라부인데, 없었다. 우시지마는 어디에서 피곤함에 잠이라도 든 건 아닐까 싶어 집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시라부는 없었다. 자신의 서재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청소 도구뿐이었다. 우시지마는 덜컥 걱정이 밀려왔다. 다시 그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시라부를 데리고 간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시지마는 무작정 다시 차키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시라부가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우시지마는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저, 발끝부터 올라오는 이 불안감을 주체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시지마는 시라부가 자주 가는 마트에 들렀다. 넓은 마트 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만 시라부는 보이지 않았다. 장을 보러 간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차오르는 불안감이 이끄는 대로 차를 몰았다. 혹여나 빚쟁이가 끌고 간 것일까 싶어서 동네의 후미진 골목까지 다 가보았다. 쓰레기들과 고양이들뿐이었다. 뒷동네도, 달동네도 가보았다. 거의 우시지마가 근무하는 학교보다도 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시라부는 보이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세워둔 차로 돌아왔다. 낯선 동네를 뛰어다니느라 머리칼은 땀에 조금 젖어 있었다. 시라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라부가 자신의 눈앞에 없다는 것이, 집에 있지 않다는 것이 왜 이리도 불안한지 모르겠다. 우시지마는 핸들에 가만히 제 머리를 박고 있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우시지마는 정 안되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날은 어둑어둑 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이라도 미리 사줄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들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아이인데. 속이 답답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밟는 잡초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험한 일을 겪고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잡초 같은 아이. 하지만 시라부는 단지 잡초가 아니었다. 잡초들 사이로 난 들꽃 같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 우시지마는 그것의 이름을 알고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마냥 고등학교 선생이라는 사명감에서만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시라부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하지만 우시지마는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해 마땅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국어 선생님은 못 되었다.

 

 

"우시지마 씨! 늦으셨네요."

 

"…시라부."

 

 

경찰서에 가기 전에 땀이라도 닦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들른 집이었다. 축 처진 손가락으로 도어락을 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어두워야 할 집에 밝게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을 안 끄고 갔었나. 하고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식탁에 추욱 처져 엎드려 있던 시라부가 의자에서 일어나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라부.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녀도 찾을 수 없던 시라부가 집에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아니, 저를 오래 기다린 건지 식어버린 밥상 앞에서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있었다. 시라부는.

 

우시지마는 식사 하셨어요? 하고 묻는 시라부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다급하게 시라부에게 다가갔다. 우시지마가 차가워진 밥그릇을 만지던 시라부를 그대로 품에 안아버렸다. 품에 가득 시라부의 체온이 채워졌다. 그제서야 우시지마는 온 몸을 휘감고 있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그대로. 시라부는 갑작스레 저를 안아오는 우시지마에 의아한 눈동자를 꼼빡였다. 저의 몸을 꽈악 껴안는 다부진 품에 안정적으로 움직이던 심장이 이리저리 마구 뜀박질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러세요? 조금 떨릴 뻔 한 목소리를 숨기며 시라부가 물었다. 시라부의 손가락이 소심하게 슬쩍, 우시지마의 등에 닿았다.

 

 

"어디 갔었나. 걱정 했다."

 

"…우시지마 씨가 어제 작업하시던 파일 들어있는 usb 가져다 드리려고 하다 길을 잃어서…결국 그냥 집에 왔어요. 죄송해요."

 

"부탁이니까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마라, 시라부."

 

"……네. 죄송해요."

 

 

귓가에 부드럽게 울려오는 우시지마의 깊은 목소리.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따라서 등을 살짝 끌어안아 보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저 차분하지만은 않은 목소리였다. 그것을 잡아낸 시라부는 뛰어대던 심장이 더 박차를 가하는 것을 느꼈다. 걱정, 해주셨구나. 우시지마와 함께 가까이 지내면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도 느껴보고 걱정 같은 것도 받아본다고 시라부는 생각했다. 평소처럼 숨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들으며 시라부는 더 꼭 넓직한 우시지마의 등을 끌어안아 보았다.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나의 우상. 되고 싶은 사람. 나의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

 

시라부는 마냥 그걸 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가슴에 쌓이는 감정이 거기서 멈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처럼 쌓이는 감정들이 올곧게 우시지마를 향한 동경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시라부는 제가 다시 액자를 사와 올려놓은 서랍장 위의 우시지마의 결혼사진이 끼워진 액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우시지마가 출근을 하고 나면은 꼭 홀로 그 액자를 뒤집어놓고는 했다. 우시지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다시 세워놓긴 했다. 시라부는 자신이 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주말에는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했다. 그건 시라부도 우시지마도 마찬가지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해가 점심시간을 알릴 때 즈음에 함께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먹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딱히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시라부는 청소를 하거나 같이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우시지마가 시라부를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시라부는 어릴 적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생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따위도 우시지마와 처음으로 가보았다. 눈을 반짝 반짝 빛내는 시라부에 우시지마는 더 다양한 곳으로 시라부를 데리고 다니고 싶어 했다.

 

점심을 챙겨먹고 나른한 오후였다. 시라부는 거실에 넓게 난 창문으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날씨가 좋았다. 오늘도 어딘가 가자고 하면 같이 가주실까. 따스한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 전에 청소를 마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시라부가 청소 도구를 들고 거실을 돌아다녔다. 매일같이 하는 청소인지라 더 이상 청소 할 구석도 없었지만 시라부는 늘 청소를 했다. 기분 좋은 손과 발로 청소를 하던 시라부가 방에서 나오는 우시지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시지마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있었다.

 

 

"주말인데 어디 가세요?"

 

"아, 응. 선 자리가 들어와서."

 

"……아."

 

"나가고 싶지는 않은데, 꼭 나와 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거절하기 곤란해졌다."

 

"슬슬 재혼도…생각 하셔야죠. 맞아요."

 

"……오늘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저녁 먹어라."

 

 

다녀올게, 시라부. 주중에 출근을 하는 것보다도 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우시지마가 현관을 나섰다. 말끔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평소보다도 더 훤칠하고 잘생겼다. 시라부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닫힌 현관문 앞에서 멀거니 서있었다. 재혼. 재혼을 해야 하지. 자신이 내뱉고도 그 말을 다시 새겨보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한 번의 결혼을 겪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능력도 있었고, 잘생겼고, 성격도 좋고. 재혼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나는? 시라부가 제 방으로 들어가다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만약에 우시지마가 오늘 선 자리가 성공적이어서 재혼을 하게 된다면. 시라부는 갈 곳을 잃었다. 발걸음도 방향을 잃었다. 애초부터 마땅히 머물러 있는 곳은 없었다. 거리를 전전할 뿐. 그런 자신을 데려와준 것은 우시지마였다. 하지만 우시지마가 재혼을 한다면 신혼 부부 사이에서 끼어 있는 것은 더 없는 민폐였다. 아무리 우시지마가 자신을 안쓰럽게 보아서 데려온 것이라고 해도 만약 새로운 사람이 이 집에 들어오게 된다면 시라부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라부는 갑작스레 바닥을 적시는 눈물에 저도 화들짝 놀라버렸다. 우시지마가 재혼을 한다면 우시지마의 집에서 나가야 한다. 같이 있을 수 없었다. 불확실한 감정에서 솟구쳤던 눈물이 점점 확신에 물들어갔다. 그대로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떠올렸다. 우시지마 씨가 평생 재혼 같은 거 안 하고, 나랑 있었으면 좋겠어. 이기적이고 한심한 생각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을 떨구는 지금의 시라부에게는 그런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저도 답답했다. 동경이라고, 우상이라고. 그렇다면 그가 평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일 텐데. 사람이 조금 저에게 따스하게 대해줬다고 이렇게나 이기적이 되다니.

 

 

"…안 돼."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대충 털어내곤 시라부가 중얼였다. 안 돼. 그 짧은 한 마디에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우시지마 씨가 재혼을 하면 안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더 이상, 우시지마 씨의 곁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 시라부는 스멀스멀 저를 덮치려고 기어오르는 재혼을 하면 안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애써 떨쳐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갔다.

 

이 이상 우시지마 씨의 곁에 있게 된다면 안 되었다. 그저 동경뿐이었던 감정이 엉뚱한 구석으로 튀어버리고도 남을게 뻔했다. 은인인데, 우상인데, 그런 자질구레하고도 쓸데없는 감정이 우시지마에게 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라부는 얼마 없는 제 옷가지를 챙겼다. 이 옷들도 다, 우시지마가 선물 해 준 것들이었다. 하나같이 디자인과 품질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그 옷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라부는 이걸 챙겨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전전하게 된다면 옷은 그냥 한 벌 정도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이건 모조리 우시지마 씨가 선물 해 준 건데. 부드러운 면이 스치는 옷을 쥔 시라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시지마 씨의 집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옷을 전부 챙겨 넣었다.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서 한 짓이긴 했지만 그건 단순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끝까지 한심하고 이기적이구나. 옷을 개어 넣으며 시라부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옷가지를 챙기자 더 이상 챙길 것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제 짐을 돌아본 시라부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챙겨가려는 짐들 중 원래부터 저의 것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원래 입던 옷은 지저분하다며 버렸다. 옷들도, 옷을 챙긴 가방도. 전부 우시지마가 선물 해 준 것들이었다.

 

그저, 밖에서 작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우시지마 씨는 커다란 장마가 되어서 내 인생에 스며들어 버렸구나.

 

다시금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시라부가 가방을 들었다. 비척비척 자신의 방이었던 방의 문턱을 넘은 시라부의 눈에 문득 청소 도구들이 띄었다. 하던 청소는 하고 가야겠구나. 생각한 시라부의 손에서 가방이 떨어졌다. 이것도 또, 이기적인 변명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시라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세심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차마 바라보지도 못했던 결혼사진이 끼워진 액자에 대고 시라부가 중얼였다. 작별의 말은 이미 꺼냈지만 시라부는 발을 떼지 않았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닐까.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으로 하는 이기적인 변명이라고 생각하며 시라부는 가방을 옆에 두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저녁 시간이었다.

 

늦을 거라던 우시지마의 말. 해가 떠 있던 시간에 나가고 뭘 하길래 늦을 거라고 얘기를 했던 걸까. 시라부는 애써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선 상대는 누구일까. 예쁘겠지. 능력도 좋을 거고, 성격도 좋을 거야. 우시지마 씨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사람으로 충분한 사람이겠지. 웅크린 무릎에 제 얼굴을 묻으며 시라부가 그리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방을 다시 풀어헤치고 집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질 것 같았다.

 

 

"……라부, 시라부!"

 

 

아. 언제 잠이 들어버린 거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시라부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고개를 들어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나갈 때와 다름없는 말끔한 차림이었다. 슬쩍 건너다본 창에는 이미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갈 때가 됐구나. 시라부는 옆에 둔 가방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정장을 입은 채 멀거니 서 있는 우시지마에게 시라부가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미동도 없던 결혼 액자에 대고 중얼였던 말을 우시지마에게 전했다. 사진에 대고 말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목소리가 자꾸만 떨려오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어디 가나, 시라부. 갈 곳은 있나?"

 

"전처럼 지내거나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죠. …잊지 못할 거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곧 새로운 인연도 만나셔야 할 텐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나는 괜찮다, 시라부."

 

 

제가 안 괜찮아요, 우시지마 씨. 가방을 든 자신의 손목을 잡은 우시지마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며 시라부가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말을 꺼내면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곳을, 우시지마 씨의 곁을 떠나야만 했고, 그 전에 우시지마 씨에게 내 감정을 조금만 아주 조금일지라도 내비치고 싶었다. 시라부는 자꾸만 눈물이 고이려 흐려지는 눈동자로 우시지마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우시지마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눈물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우시지마 씨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그때 떠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시라부."

 

"저는요, 사랑을 받아 본 적도 해 본 적도 없어요."

 

"……."

 

"하지만 단순히 저의 우상이었던 우시지마 씨를, 정의 내릴 수 없는 시선으로, 감정으로 이렇게 바라고 그린다는 게. 진심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거라는 걸 알아버렸어요. 그래서…여기 더 못 있어요. 죄송해요."

 

 

결국 시라부는 잔뜩 흐려진 시야로 우시지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좋은 분 꼭 만나시면 좋겠어요. 뒷말은 차마 잇지 못한 채 시라부가 숨을 크게 들이 내쉬었다. 숨이 들이 내쉬는 만큼 눈물도 자꾸만 흘러내려 바닥에 얼룩을 만들었다. 왜 바닥은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서, 눈물이 더 잘 보이는 걸까. 덧없는 후회를 해보며 시라부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우시지마의 손을 잡았다. 우시지마의 손은 생각보다 더 쉽게 떨어져나갔다. 그게 더 서러웠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깨끗한 바닥. 우시지마 씨의 결혼사진.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은 우시지마 씨의 구두. 우시지마 씨가 사주신 신발. 우시지마 씨가 스며들어 폭 젖어버린 인생을 언제쯤 깨끗하게 말려 다시 펼칠 수 있을까. 시라부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현관 앞에 섰다.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신기가 싫었다. 끝까지 이렇게. 이기적이고 한심하구나.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고, 꾹 말아 쥔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신발을 신으려던 시라부를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잠깐, 잠깐 기다려라, 시라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

 

"네 말을 빌리면…내가 단순히 가엾은 아이라고 생각했기에 데려온 너를. 시라부 너를, 서른 살이 넘은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어처구니없게도 바라고 그리는데."

 

 

이게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인가?

 

우시지마의 물음은 곧 시라부에게 있어 대답이었다. 우시지마와 시라부는 같은 감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시라부는 어째 멈추어야 할 눈물이 더욱 더 차올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돌아본 우시지마가 흐리게 보였다.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시라부는 이미 진하게 그려진 눈물자욱 위로 끊임없이 길을 그리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았다. 그 대신 우시지마의 손이 부드럽게 눈물을 훔쳐 주었다. 시라부의 손이 먼저 우시지마를 가득 끌어안았다. 우시지마의 손도 힘껏 시라부를 품에 안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시라부. 처음으로. 너를. 우시지마는 시라부의 대답을 대신했다. 시라부는 말없이 우시지마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사랑하는 나의 우상, 나의 첫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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