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켄지로는 부스스하게 자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 근육이 붙은 하얀 몸에 붉고 푸른 자국들이 만연했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팠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채워져 있던 옆자리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이제 5시 반을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아마 훈련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나간 모양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살짝 열린 침실 창문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켄지로는 몸을 떨며 욕실로 들어갔다. 켄지로 역시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시라부 켄지로, 정확히 현재는 우시지마 켄지로. 여전히 명성을 잃지 않고 명문 강호교로 자리 잡고 있는 시라토리자와 남자 배구부의 코치이자 일본 배구 국가대표 주장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반려. 그런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켄지로의 꽁무니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또 다른 이름은, '오메가'였다.
오메가, 세상의 인간을 나누는 세 가지의 분류 중 하나. 그리고 가장 약한 분류. 최근에는 줄어든 알파의 개체수로 인해 서서히 알파의 피를 이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분류로 우대를 받는 중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하대 받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분류였다. 켄지로는 다행히 우성 오메가로 태어나 그런 단점들을 밟고 강호교 시라토리자와의 주전 세터까지 올라갔던 오메가의 귀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를 막아선 것은 오메가라는 스스로의 형질이었다. 모든 면에서 알파들에게 밀리는 오메가는 받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켄지로는 절망하지 않았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우성 알파인 반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당연하게 국가대표 선수로 더욱 넓어진 코트 위에 남았다.
켄지로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물을 껐다. 욕실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6시가 좀 덜 되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딴 생각을 하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켄지로는 급히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며 욕실을 나왔다. 뭉게뭉게 피어올라 욕실을 가득 채운 김만큼이나 뿌연 감정이 켄지로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좋은 아침."
"아, 오셨어요?"
"미안, 늦잠 자는 바람에."
6시 40분, 결국 시간을 조금 오버해 버리고 말았다. 켄지로는 숨을 조금 몰아쉬다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이른 아침부터 체육관은 배구 연습을 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끈적끈적한 땀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켄지로는 기본적으로 무척이나 성실한 코치였지만, 종종 아침 연습 시간에 학생들보다 늦게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에 켄지로가 내뱉는 말은 다른 부가적인 이유도 없이 그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그 이유였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는 이상은 아파도 늦지는 않는 사람이라 학생들은 의아해 했지만, 굳이 코치에게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 와카토시."
-체육관인가?
성실히 연습을 해 나가던 학생들이 수업을 받기 위해 다 빠져나가고 나서, 배구공을 정리하던 켄지로의 져지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제 반려였다. 묵직하고 낮은 음성이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아침 일찍 나간 사람의 목소리를 이제야 들으니 겨우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대뜸 체육관이냐 물어오는 목소리에 켄지로가 네, 갑자기 그건 왜요? 하고 질문하자 와카토시는 별 것 아니다, 그저 목소리가 울려서.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무심한 것 같아도 꽤 여러 가지를 잡아내는 사람이었다. 켄지로는 배구공을 다 정리하고 비품실 문을 닫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침은 먹었나?
"아뇨, 급하게 나오느라 아직..."
-지금이라도 챙겨 먹어라.
켄지로는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시라토리자와에 재학 중이었을 때도 아침을 잘 챙기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 습관은 고등학교 졸업 후, 동거를 시작한 와카토시가 아침을 먹지 않는 켄지로를 보고 아침을 챙기라고 몇 번이나 답지 않은 잔소리를 하고 나서야 고쳐졌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바쁘다 싶으면 아침을 챙기지 않는 켄지로의 모습에 그 때마다 아침을 챙기라고 하는 와카토시의 목소리가 오늘로 연속 3일 째였다. 켄지로는 불편해질 속을 생각하곤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가 애써 알겠다는 답을 던졌다. 전화 건너편에서 와카토시를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다시 가보겠다는 묵직한 인사가 들렸다.
"이따 집에서 봬요."
그 작은 인사가 내뱉자 전화가 끊겼다. 켄지로는 체육관의 문을 닫아걸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의 익숙하고 묵직한 음성이 오늘은 목을 콱 틀어막는 느낌이었다. 켄지로는 오늘 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에 한 잡생각 때문이리라. 켄지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교무실이 있는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핸드폰으로 시각을 확인하니 아직 점심시간을 넘지도 않았다. 오늘따라 하루가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전화를 주곤 했다. 오늘은 바쁜 것 같았으니 오지 않으려나. 켄지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뭐해?"
"신경 꺼, 타이치."
"뭐 하냐고 묻는 것도 안 되냐?"
비워져 있던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며 물었다. 켄지로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하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타이치, 라고 불린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켄지로를 바라봤다. 카와니시 타이치, 켄지로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시라토리자와 학원 고등부에 재직 중인 선생님이었다. 와카토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켄지로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지. 곧 불쑥 내밀어지는 샌드위치와 커피에 켄지로가 눈을 한 차례 찡그렸다. 카와니시의 손이었다.
"너 아침 안 먹었다고 챙겨 달래."
"누가."
"몰라서 묻냐?"
켄지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깠다.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와카토시겠지. 켄지로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에도 종종 카와니시가 그와의 메신저 창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평소 같은 말투로 저를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다. 괜히 목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커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쓴 액체와 반쯤 서로 뒤섞인 반고체 덩어리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카와니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말 좀 들을 때도 되지 않았냐, 켄지로?"
"뭔 소리야."
"우시지마상 시즌 시작되고 내가 이 짓을 벌써 몇 달 째 하고 있는지는 알아?"
"알 바야?"
톡 쏘아져 오는 그 말에 카와니시는 이마를 짚었다.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샌드위치를 신경질적으로 씹어 먹는 모습에 카와니시는 제 커피를 땄다. 띠링, 경쾌한 알림이 들려오며 메신저의 팝업창이 거무칙칙했던 화면 위로 떴다. 우시지마, 라고 적힌 발신자를 보고 카와니시는 새삼 마시고 있던 커피를 뱉어낼 뻔 했다. 한두 번 메신저를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이름이었다. 카와니시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켄지로는 무슨 꽃을 좋아하지?
이번엔 진짜 뿜을 뻔했다. 물론 뿜어내는 대신 잘못 삼키는 걸로 대신했지만. 사레가 들려 켈룩거리는 카와니시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켄지로의 시선이 달라붙었다. 뭘 봤길래 그래? 하며 제 자리를 힐끗 쳐다보려는 켄지로의 모습에 급하게 핸드폰을 뒤집어엎었다. 들키면 분명 무슨 난리든 날 것 같았다. 카와니시는 기침을 내뱉다 말고 별 거 아니야, 라며 켄지로의 얼굴을 밀었다. 구겨진 표정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안 될 일이었다.
"아니, 대체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옥상으로 올라온 카와니시는 다시 메신저를 읽었다. 잘못 읽은 게 아니었다. 카와니시 타이치, 시라부 켄지로의 10년 지기 절친인 그는 켄지로가 좋아하는 꽃을 몰랐다. 켄지로는 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굳이 꽃을 사서 두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받은 꽃을 버리거나 거절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내가 알 길이 있나. 카와니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눈치가 빠른 켄지로에게 직접 좋아하는 꽃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당연히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이 켄지로가 좋아하는 꽃을 알 거라고 믿고 메신저를 보낸 우시지마에게 모른다고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생 때의 일이 생각났다.
'무슨 꽃이든 상관없으니까 우시지마상한테 꽃 한 송이라도 받아보고 싶다.'
'그런 걸 챙겨주실 성격은 아니지 않아?'
'아니까 닥쳐, 타이치.'
아니, 챙겨주실 것 같은데. 그 때 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가는 지금, 카와니시는 9년 전, 18살의 켄지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카와니시는 교무실로 내려가며 즐겁게 자판을 쳤다. 이 걸로 제 역할은 끝난 거다.
-켄지로는 우시지마상이 사주시는 거면 뭐든 좋아할 걸요.
와카토시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카와니시에게서 온 메신저를 확인했다. 모호하지만, 이것보다 확실할 수는 없는 대답. 와카토시가 한참을 핸드폰만 쥐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팀원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뭐야, 누군데? 반려야? 하고 물어오는 말들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반려인 켄지로는 아니었기에 반려는 아니라고 짧게 대답했다. 팀원들은 그 말에 금세 흥미를 잃고 흩어지기에 바빴다. 단순히 요즈음 들어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이 역시 카와니시가 전한 말이었다.)켄지로를 위해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꽃을 사가려고 했을 뿐인데 선택이 더 어려워진 느낌이었다.
"오이카와."
그래서 지나가던 갈색 머리의 남자를 붙잡은 걸까. 남자,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 살풋 일그러졌다. 같은 팀이지만, 전부터 이어져 온 악연 때문인지 오이카와는 와카토시를 볼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지었다. 정작 와카토시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듯했지만. 뭐야, 우시와카쨩. 하고 탁 쏘아져 나오는 경계심 가득한 말에 와카토시는 오이카와의 갈색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쳐다보지만 말고 말을 해, 우시와카쨩."
"무슨 꽃이 선물하기에 제일 예쁘지?"
"하아? 그걸 왜 오이카와상한테 묻는 거야?"
"많이 선물해봤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이유였나. 오이카와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 확실히 꽃을 많이 선물해 보기도 했고, 이 인간이 누구에게 꽃을 주고 싶은지도 훤히 보였다. 아마 시라부 켄지로겠지. 오이카와는 문득 기지개를 폈다.
"켄지로쨩한테 선물하게? 그럼 켄지로쨩이 좋아하는 꽃을 줘야 되는 거 아닐까나."
"카와니시가 켄지로는 내가 주는 것이면 다 좋아할 거라고 하더군."
걔도 뭐 좋아하는지 모르는구만. 오이카와는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시라부 켄지로를 한 차례 떠올렸다. 눈에 띠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제나 중심에 있는 것 같고, 순하고 담백한 듯하면서도, 까칠하고 날카로운 사내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세터였지. 성실하다 못해 완벽주의자의 느낌마저 났던. 오이카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꽃이 있어 툭 하고 내뱉었다.
"수국은 어때? 켄지로쨩하고 잘 어울리는 꽃이잖아. 보면 볼수록 켄지로쨩 생각나는 꽃일 걸."
수국이라는 꽃이 뭉뚱그려져 머릿속에 떠올랐다. 푸른빛 같기도 하고 보라 빛 같기도 한 둥그런 덩어리 같은 꽃. 그 자체로 하나의 꽃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꽃들이 모여져 만들어져 있는 그런. 와카토시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는 꽃이었다. 둥글둥글하게 귀여운 그 얼굴에도 무척이나. 와카토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새에 시간은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제기랄."
켄지로는 퇴근을 하자마자 욕을 읊조리며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오늘따라 말도 많고 사고도 많았다. 그런 일들에 치여 지쳐가는 것은 켄지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여김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지끈거리는 머리에 켄지로가 몸을 일으키며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와카토시가 귀가하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아침 이후로 쓰지 않아 차가워진 욕실의 문이 덜컥, 열렸다가 달칵, 닫혔다.
"손님, 무슨 꽃을 찾으세요?"
건장한 체격의 와카토시가 손님이 없는 한적한 꽃집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던 여자가 일어서서 손님을 맞았다. 꽃향기가 가득한 꽃집 안에서 푸른빛을 띠는 수국을 찾기란, 꽃에는 관심도 없던 와카토시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국을 찾는다고 말을 건네자 여직원은 잠시만요, 하고는 꽃집 안을 돌아다녔다. 수국이 아니더라도, 켄지로는 꽃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꽃향기들이 코끝에 맴돌았다. 직원이 수국을 찾아올 때까지, 와카토시는 꽃들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하실 거예요."
"...누가 말인가."
"받으시는 분이요."
"좋아했으면 좋겠군."
꽃을 받아들고 꽃집을 나왔다. 잠시 꽃향기를 맡아보자, 켄지로에게서 종종 나는 냄새가 났다. 이래서 잘 어울린다고 한 건가. 선물을 해주지 않은지 오래 되기도 했고, 워낙 잘 웃는 편이 아닌 켄지로가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와카토시는 차에 타 꽃을 조수석에 놓고 시동을 걸었다. 이쯤이면 켄지로도 퇴근했을 터였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몸을 푹 담구고 있으니, 피로가 조금이나마 씻겨 나갔다. 차가운 숨을 내뱉으며 욕조에 얼마나 잠겨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저 따뜻한 물이 좋아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왔는지 퍼뜩 알아 챈 켄지로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저녁도 차리지 않은데다가 욕조에서 빠져나오기 싫어, 괜히 느릿느릿 움직였다.
"켄지로, 씻고 있나."
욕실의 문이 잠겨 있다. 와카토시는 욕실 문에서 손을 떼고 물러서서 그렇게 물었다. 그에 켄지로는, 묵직하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핑계로 더 느릿느릿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참방거리는 소리에 와카토시는 제 겉옷을 벗으며 꽃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오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와카토시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켄지로는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때 아닌 수국향이 켄지로의 코를 간지럽혔기에 켄지로는 고개를 들었다.
"웬, 수국이에요...?"
의아한 듯 천천히 내뱉어지는 그 질문에 와카토시는 그저 수국을 켄지로의 품에 안겨주었다. 물의 향과, 수국향이 한데 뒤섞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륵도륵 굴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토끼 같았다.
"그냥, 닮아서"
켄지로는 수국을 닮은 사람이었다. 와카토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 안에 맴도는 수국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물에 있다 나와서인지, 선물이 기뻐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꽃에 코를 파묻고 있는 켄지로는 퍽 사랑스러웠다. 와카토시가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드리워진 그림자에 켄지로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켄지로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이 겹쳐졌다.
이제야 켄지로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잡생각이 사라졌다.